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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 수정도 로봇이?

경남 고성군의 한 애호박 농가. 2,400㎡ 하우스에서 매일 아침 4시간씩 손으로 꽃가루를 묻히는 작업이 반복된다. 애호박은 자연 수정이 안 되는 작물이라 사람이 일일이 해줘야 한다. 농장주는 오전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그런데 올해, 이 고된 작업을 대신할 녀석이 등장한다.
ChatGPT랑 뭐가 다를까
피지컬 AI. 이름부터 좀 생소하다. 쉽게 말하면 ‘몸을 가진 인공지능’이다.
ChatGPT 같은 AI는 화면 속에서만 산다. 질문하면 답하고, 글을 쓰고,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근데 피지컬 AI는 다르다. 카메라로 보고, 레이저로 거리를 재고, 로봇 팔로 직접 뭔가를 한다. 보고, 생각하고, 움직인다. 세 박자가 맞아야 한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2025년 초에 이런 말을 했다.
”이제 스스로 추론하고 계획하고 행동할 수 있는 피지컬 AI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 말이 벌써 현실이 됐다. 공장에서, 물류창고에서, 그리고 이제 우리 농촌에서.
경남농업기술원이 만들고 있는 것들
경남농업기술원 디지털농업연구센터. 여기서 지금 세 가지 피지컬 AI 로봇을 개발 중이다.
첫 번째, 애호박 수정 로봇. 앞서 말한 그 고성군 농가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만들고 있다. 꽃을 인식하고, 수술 위치를 파악하고, 꽃가루를 정확히 묻히는 작업. 사람 눈으로 봐도 헷갈리는 걸 로봇이 해낸다. 시제품이 조만간 나온다.

두 번째, 단감 선별 로봇. 이미 시연회까지 마쳤다. 단감을 크기별로 나누고, 상처 난 건 골라내고, 포장까지 한다. 예전에는 아주머니 대여섯 명이 하루 종일 붙어있어야 했던 일이다.
세 번째, 딸기 재배 실험. 이건 좀 더 야심 찬 프로젝트다. 수확은 물론이고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생산체계까지 연구한다. 안혜빈 연구사 말로는 “햇빛 없이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고 한다.
남진우 연구사는 이렇게 말했다. “피지컬 AI가 대체되면 인건비 절감도 있지만, 농민들 삶이 조금 더 편해지겠죠.”
로봇 눈의 비밀: 카메라 + 레이저
피지컬 AI가 일을 하려면 세상을 봐야 한다. 근데 사람 눈처럼 대충 보면 안 된다. 정밀하게 봐야 한다.
여기서 두 가지 기술이 합쳐진다.

컴퓨터 비전. 쉽게 말해 AI가 장착된 카메라다. 딸기 색깔을 보고 익었는지 판단하고, 잎과 줄기를 구분하고, 상처 난 부분을 찾아낸다. 흥미로운 건 사람 눈으로 못 보는 것도 본다는 점이다. 적외선 영역에서 식물 스트레스를 감지하면, 잎이 시들기 며칠 전에 미리 알 수 있다.
라이다(LiDAR). 레이저를 쏘고 반사되는 시간을 재서 거리를 측정한다. 밀리미터 단위로 정확하다. 어둡든 밝든 상관없다. 안개가 껴도 된다. 딸기 수확 로봇 연구에서 ±0.05미터 정확도를 달성했다는 보고도 있다.
둘을 따로 쓰면 정확도가 85~90% 정도. 근데 합치면? 95% 이상으로 뛴다. 1+1이 3이 되는 셈이다.
865억 달러 시장이 열린다
농업 로봇 시장 전망치를 보면 눈이 동그래진다.
2033년까지 865억 달러. 우리 돈으로 120조 원이 넘는다. 연평균 성장률 20.5%. 이 정도면 그냥 성장이 아니라 폭발이다.
왜 이렇게 커지나? 답은 간단하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
우리나라 농가 인구 평균 연령이 65세를 넘겼다. 젊은 사람은 농촌에 안 온다. 외국인 근로자도 구하기 어렵다. 인건비는 계속 오른다. 그렇다고 농사를 안 지을 수는 없다. 밥은 먹어야 하니까.
로봇밖에 답이 없다. 그래서 정부도 뛰어들었다.
정부가 2,900억 원 쏟는다
2026년 2월 3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국가 농업AX플랫폼’ 추진안이 발표됐다. AX는 AI Transformation, 즉 AI 전환이라는 뜻이다.
총사업비 2,900억 원. 정부 출자금만 1,400억 원이다. 농림축산식품부 표현을 빌리면 “고령농과 초보농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지능형 농업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한다.
기존 스마트팜이 하드웨어 위주였다면, 이건 소프트웨어와 AI가 중심이다. 센서 달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센서가 보내는 데이터로 AI가 판단하고 행동까지 하게 만든다.
전라남도에서는 벌써 움직임이 있다. 농업 AX 글로벌 비즈니스센터(450억), 실증센터(400억), AI 기반 생육지원 데이터센터(300억). 무안군에 총 1,150억 원 규모로 구축 예정이다.
아직 넘어야 할 산
솔직히 말하면 피지컬 AI가 만능은 아니다. 과제가 있다.
가격. 아직 비싸다. 소규모 농가가 선뜻 사기 어렵다. 다만 해법이 나오고 있다. RaaS(Robot as a Service)라고, 로봇을 사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만 빌리는 모델이다. 수확철에만 로봇 임대하고, 비용은 작업량 따라 내는 식이다.
학습. 농업 환경은 너무 다양하다. 기온, 습도, 작물 상태가 농장마다 다르다. 모든 경우를 프로그래밍할 수 없다. 그래서 텔레오퍼레이션 학습이란 게 나왔다. 숙련된 농부가 로봇을 원격 조종하면, 로봇이 그 동작을 보고 배운다. 20년 경력 농부의 손끝 감각을 데이터로 바꾸는 거다.
현장 적응. 실험실에서 잘 되던 게 밭에 나가면 안 될 수 있다. 돌멩이, 진흙,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 변수가 많다. 이건 실증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
농촌이 사라지기 전에
”소멸 위기”라는 말이 농촌에 붙은 지 오래다. 빈집 늘고, 학교 문 닫고, 경로당만 붐빈다. MBC 뉴스 표현 그대로 “고령화와 농촌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놓인 우리 농촌.”
피지컬 AI 농업 로봇이 이 위기를 단번에 해결하진 못한다. 하지만 시간을 벌어줄 순 있다. 사람 한 명이 하던 일을 로봇이 맡으면, 그 사람은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아니면 좀 쉴 수 있다.
경남농업기술원 남진우 연구사 말이 맴돈다.
”농민들의 삶이 조금 더 편해지겠죠.”
조금 더 편해지는 것. 그게 기술의 존재 이유 아닐까.
참고: 이 글에 언급된 경남농업기술원 시제품 출시 일정, 국가 농업AX플랫폼 공모 일정(2026.2.5~4.3) 등은 2026년 2월 기준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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